다수의, 다수를 위한, 다수에 의한 추론의 결론은 무엇이 옳은가
참으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바로 EBS에서 방영중인 '하버드 특강'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하버드 정치철학 교수인 '마이클 센델'이 나와 강연을 한다. 긴가민가한 기분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흥미로운 주제로 스토리텔링으로 시작된 강연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먼저 결과론적 도덕성, 정언적 도덕성이 갈라졌는데 이렇게 딱 2가지로 나누어지는 것이 맞는건가. 이렇게 나눈 기준이 무엇이 효력을 발휘했을까. 무엇이 떠올랐기에 이런 추론들이 나눠졌는가부터 의문이 들었다. 아래는 그 2가지를 설명한 스틸컷이다.



결과와 의무와 권리에 따라 추론이 정해졌다. 먼저 정한 것에 대한 따라가는 것에 대한 추론따윈 없는건가. 하기야 인간으로서의 의견에 대한 판단은 결코 여러가지로 나뉠 수 없는 장점이자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택과 이야기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간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추론들은 몇 가지 밖에 되지 않는 점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이고, 새로이 나올 수 있는 추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시나 인식하고 있다. 살짝 여기에 견주어 연애와 나의 지위적 성공에 대한 연관성과 관계성 역시 조금은 결과론적에 빗대어 내 자신에게 그러한 도덕성 판단을 내린게 아닌가. 대부분 자신의 인생은 첫번째 추론에 의하여 그렇게 판단할 것이고 행동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점에 대해서 그리 복잡하게 얽힌 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다.


두 번째, 공리주의에 대한 부분인데 벤담이 제기한 것인지 얘기를 했을 뿐인지는 확실한가. 아무튼 대다수와 대다수의 행복이 큰 행복이자 진리이다라는 간략하게 설명해볼 수 있는 견해인 데, 참으로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이를 주장한 벤담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서 어떠한 상황에 처하고, 즉 어떠한 지위와 지리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는가와 받아들이는 입장, 즉 수용자 입장에서는 또 어떠한 주변 요인들이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차이 때문에 상당한 모호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실화이야기를 꺼내면서 여러가지 문제들을 우리들에게 던져 주는 2번째 수업은 '동의'라는 부분이 상당히 신경이 쓰일 것이다. '동의'가 미치는 영향과 여러가지 관점들이 모여 아래와 같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인간으로서의 인권, 기본권이 어떠한 기준으로 나눌까. 이 역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입장 차이가 난다면 또한 의견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특정한 기본권이란 무엇인가. 갖고 있고 없고를 배제한 후,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면 먼저 그게 과연 특정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특정한게 또 무엇일까. 

정당한 절차-> 정당한 결과라는 이 또한 애매모호한 의견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당한 것이 있단 말인가. 질문 자체가 벌써 정당한 절차라고 치부해버리는데 무엇이 정당한 것인가. 절차에 정당함이 있단 말인가. 그것 또한 의미 해석에 따라 질문 틀부터 달라져 새로운 질문을 만들게 된다. 모든 결과에 정당화. 참으로 거시적이자 미시적인 질문이자 답변을 바라는 것인가.

마이클 교수가 말했듯이 '동의'라는 부분이 참으로 흥미롭다. 위 질문을 보면 결과론적으로 동의가 도덕적 기능을 발휘한다는 말인가. 어떤 도덕적 기능이 되었든 간에 어떠한 기능을 유발시킨다는 것인가. 동의는 또 그 자체로 동의인 의미로 부여해서 해석하여 그로 인한 결과를 빗대어 도덕적 기능을 설명해야만 하는 것인가. 동의란 도덕적으로 이 역시 틀을 형성시키는 데 과연 동의가 도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인가. 여기서 말한 '동의'라고 치자면 여기서 말한 의미로 관점을 고정하고 생각을 해보자면 그렇게 됨으로써의 도덕적 기능은 인정이란 말인가. 회피란 말인가. 아님 압력이란 말인가. 또 무엇이 있지 않은가. 

조금 지났지만 심리학을 취미로 들여다 보면서 철학 역시 들여다 보긴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처럼 이렇게 생각하게 해주는 흥미로운 일거리를 주어서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여자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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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ryoe